나는 재난영화가 좋다! # 문화+ review

... 어쩌면 은근 스포(?) - 주의 요망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재난영화가 좋다!
미국식 영웅주의 딥임팩트 같은 영화도 머리 비우고 즐길 수 있고,
친구가 비난해 마지 않는 투모로우조차도 재밌다.
한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하자면-
나는 재난영화가 좋다!


때문에 내가 해운대를 기대한 것은 당연하다.
재난영화가 주는 공포와 스릴이 크려면 무엇보다 '사실성'이 중요하다.
사실적이라 함은 일종의 가능성이다.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과 그 재난을 내가 당할 가능성.
그런 의미에서 국내를 무대로 한 재난 영화는,
스케일 크고 나와 동떨어진 미국 이야기들보다 기대될 수 밖에 없다.
똥개도 제집 앞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간다는 말, 재난 영화에게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나에게 해운대가 짜증났던 이유는 재난이 너무 늦게 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난영화는 재난이 닥치고 이를 헤쳐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어쩐지 해운대에서는 재난이 제때(?)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영화 보는 내내 '도대체 쓰나미는 언제 오는 거야...'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몰아 닥친 쓰나미.
가만 보니 이 영화는 사람들이 재난을 이겨내 가는 영화가 아니라,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죽어가는 영화였다.
이것도 어찌나 사실적인지.

사실 그렇다.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어떤 잘난 인간이 살아 남겠다고 마음 먹었다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차 쓰나미 이후 찌질이가 살아남는 과정을 보여준 광안대교 씬처럼,
이런 재해 앞에서 인간의 생명이란 그저 '행운'에 불과할 뿐이다.

쓰나미가 오는 시점을 미뤄 가면서 필름을 낭비했던 덕분에,
관객은(최소한 나는) 등장인물에 충분히 몰입될 수 있었다.

착하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사람들과
롯데와 야구를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부산사람들에게도, 부산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익숙함과 현실성을 부여했다.

때문에 쓰나미 이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아니라,
죽어가는 다수를 보며 그 끔찍함에 고개를 돌리고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그 상황들이 와닿았다.




조난자를 살리기 위해 장렬히 전사하는, 영웅 같은 구조대원이 아니라-
사실은 정말 죽고 싶지 않고 너무나 두려워 손이 떨리고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닥친 건지 이해할 수 없어 '아이씨-' 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결국 조난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줄을 끊어야 하는, 사실은 '사람'이었던 구조대원.

도망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밟고 지나가는 피서객들,
어린이와 여자는 안중에도 없고 구조 헬기에 서로 타려고 발버둥치는 조난자들까지.

몹시도 사실적인 설정 속에서,
살아남은 주인공들조차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고-
가장 영웅에 가까운 캐릭터도 메가 쓰나미 앞에서는 두려움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한참 웃다가 쓰나미 오고 나서는 펑펑 울었다.
어떤 사람은 해운대가 억지로 눈물을 짜낸다는 평을 하던데, 나는 진심으로 울었다.

숱한 재난 영화를 봐 왔지만, 처음으로 울었고, 처음으로 재난이 두려웠다.
어마어마한 파도에 우리가 놀던 호텔이 쓸려 갈 때에는 우와~~ 였지만,
그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도, 체력이 좋은 사람도 죽어가는 판에-
하물며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살아 남은 이유는, 그저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는 "이건 재난 영화가 아니라 휴먼 스토리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재난이 주는 공포를 여과 없이 다뤘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론 진짜 재난영화이다.





[멋대로 뽑은 베스트 등장 인물]
롯데팀의 야구 선수 이대호('이대호'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실제로 사직 구장에 가면
사람들이 정말로 설경구처럼 비닐봉투에 바람을 담아 머리에 쓴다는 말을 듣고 빵 터졌다.

덧글

  • 곰수 2009/08/04 15:56 # 답글

    아.. 저도 어제 보고왔어요..
    해운대.. 기대이상이었던거 같아요 =ㅁ=;;

    사직구장씬은 참 재미있었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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