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4일
이건 신종 연좌제인가...
어제 무척 속상한 일이 있었다.
내 동생은 4학년 2학기, 취업 준비생이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문에, 동생의 스트레스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짧은 기간이지만 아주 좋은 조건으로 계약직 컨설턴트 제의가 들어와서 요즘은 신나고 일하고 있더랬다.
그런 동생이 몇일전 **엔지니어링의 인적성 시험을 봤고, 붙어서 면접 기회가 주어졌지만,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서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었다.
어제였다. 그러니까 일요일이었다.
오후에 동생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씨, 취직 했어?"
다짜고짜 반말하는 개념없음에 동생은 퉁명스럽게 응대했다.
"어디세요?"
"어~ ** 엔지니어링."
황당했다. 기업의 얼굴이라는 인사담당자가 입사지원자에게 다짜고짜 반말이라니.
동생은 아직 정규직으로 취직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자, 그 사람은 이번에 사람을 더 뽑게 되었는데 내 동생에게 면접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윗선과 회의를 해야 하지만 그 전에 취직 여부를 확인코자 전화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 **(제 동생)씨는 ##(제 이름)씨랑 좀 비슷한가?"
내 동생은 깜짝 놀랐다.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이야기하며 질문하니, 당연히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거다.
아까 퉁명스러웠던 자신이 민망해졌던거다.
"아... 저희 언니를 아세요?"
"아니, 가족 관계에 쓰여 있길래."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이 사람 완전 개념 죽쒔구나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씨가 한겨레 다니던데, **씨도 좀 진보적인가?" 라고 묻더란다.
동생은 "언니는 경제연구소에 있어 하는 일이 신문사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라고 답변하고 있는데 중간에 말을 끊으며 "경제연구소라고 해봐야 한겨렌데 노조 같은거 연구하겠지 뭐. 그나저나 **씨도 언니 영향을 좀 받은거 아니야?" 라고 응수하더란다. 그 후에도 노무현이 좋냐, 이명박이 좋냐 라든지, **씨는 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같은 질문을 던지고는, 마지막 한방을 날렸다.
"이번에 많이 지원했어? (동생이 제법 지원했다고 답하자) 그래? 언니가 한겨레여서 많이 떨어졌겠네."
!!!!!!!!!!!!!!!!!!!!!!!!!!!!!!!!!!!!!!!!!!!
지금 머리 속으로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런 미친 새끼가-" 라고 하고 싶지만, 거르고 걸러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정도로 톤 다운 하여 내뱉도록 하겠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이유는 '여기가 어디냐'가 아니라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느냐'에 있다.
나는 한겨레경제연구소(보통 HERI라고 부른다)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social venture(사회적 기업이라고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는 조금 다르다)에 대해 연구하고 컨설팅하는 일을 한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좀 더 사회와 호흡하며 경영해 나갈 수 있다면 사회 전체의 행복 지수도 올라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내가 믿고 생각할 수 있는 선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고, 그래서 이곳을 택했다.
이런 나의 마인드가 내 동생의 앞길을 막을만큼 불순한 것인가?
나는 그 인간의 마지막 멘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동생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나때문에 망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서다.
동생은 지원서를 쓸때 언니의 직장에 한겨레라고 쓰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너무나 불쾌할까봐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사실 가끔 이런 개인들은 많이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내가 속한 조직만 가지고 나를 규정짓거나 비난하는 사람들 말이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라는 타이틀도 그랬고, 한겨레경제연구소 라는 타이틀도 그랬다.
그래 괜찮다. 규정짓어도 괜찮다 치자.
그 타이틀도 내 것이니까 괜찮다 치자. 나를 규정하는데 필요한 소스라고 이해한다 치자.
하지만 내가 한겨레 다니는 것과 내 동생이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그래. 그것도 그렇다 치자.
내 동생이니까 내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 대충 한겨레 구독하는 사람하고 동급으로 취급했다고 치자.
하지만 이것은 개인이 그랬을때 용납할 수 있는 문제이다.
어떤 조직을 대표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개인이 그런 식으로 말을 내뱉었을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 보통 이런걸 연좌제라고 불렀던가. 영화 <실미도> 이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라 낯설다.
**엔지니어링 덕분에 실소를 머금은 일요일이었다.
# by | 2009/12/14 12:49 | # 일과 연애와 일상 | 트랙백 | 덧글(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