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옴 # 삶+서른넷 직장인

돌아왔다.

'삶+스물아홉 직장인'이라는 카테고리는 '삶+서른넷 직장인'이 되었고,
내 삶의 따스함을 차지하던 아기고양이 푸딩은 내 친구집에서 친구 고양이와 함께 늙어가게 되었다.
그 사이 나에게는 5살짜리 개구쟁이 아들이 생겼고,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아 더없이 즐거운 '잡플래닛'도 만 3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이글루스가 주는 포근함조차 미뤄야 할 정도로 정신 없는 삶이었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여기 와서 이야기하기 민망하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했던 것 같다.

아무리 공동창업이라지만, 창업가의 삶이란 월급쟁이의 삶과 비교해서 결코 뒤쳐지지 않는 피토하는 삶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창업가의 삶보다 아들 엄마의 삶이 더 어렵다. 피가 아니라 골수를 토하는 느낌ㅋㅋ

은퇴한 집사가 되었다고 실망하셨을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5년이 흘렀으니 이젠 이글루스에 들어오지 않으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
돌아왔다. 5년 만에, 여기로.




진격의 스토커, 푸딩 # 고양이+ 푸딩 냐옹-

푸딩에게는 엄마를 스토킹하는 버릇이 있다.
집안 어딘가에 앉아 있더라도 반드시 엄마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으며, 내가 움직이면 따라서 자리를 옮긴다.

사실 푸딩이 졸졸졸 따라다녀주는건 귀엽기도 하고 좋은 편인데, 문제는........ 나의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편이라는 점!!!

그러다 보니........







엄마- 샤워하냐옹-

(내가 너 찍을라고 핸드폰 들고 들어왔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도, 이렇게 화장실 문틈 사이로 묵묵히 지켜보시는 절정의 스토킹 스킬을 시전해주신다.

어떤 사람들은 문을 닫고 씻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랬다가는 화장실 문 앞에서 목청껏 우는 어른 고양이를 생성할 위험이 있으며, 더 큰 문제는 문을 닫는 것이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푸딩, 본격 문여는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eIEcv-oo6TE


하지만 물 싫어하고 기다리는거 싫어하는 전형적인 똥꼬양이 푸딩.
엄마의 샤워 시간이 (자신의) 예상보다 길어지면 쳐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문을 열고...)



언제까지 씻을테냐옹-



진격한다.
전혀 귀염성 없게, 완전 상고양이가 되어, 화장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내면서.

물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지만 충분한 압박감을 선사하며 임신 8개월의 만삭인 나를...ㅠㅠ
배 밑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아서 씻을때마다 힘이 드는 나를...ㅠㅠ

참치 한캔 따주고 샤워하러도 가보고 자고 있을 때 샤워하러도 가보고 남편한테 놀아달라고 하고 샤워하러도 가봤지만-
매번 한치에 오차도 없이 어느 순간 문을 열고 지켜보고 있다.

푸딩, 넌 진정 스트롱한 스토커야.

다 괜찮지만, 곧 태어날 동생에게는 이런거 가르치지 마렴.
엄마 화장실 갔는데, 고양이 아들하고 인간 아들이 나란히 앉아서 구경하고 있으면... 그것만큼은 너무 부끄러울 것 같구나...ㅠ

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삶+서른넷 직장인

연애를 10년 했다.

농담처럼, 연애 10년 기념으로 결혼을 한다고 말했었다.

20대를 통째로 그 사람과 보내고, 30대에 진입하기 앞서 그 사람과 결혼한 셈이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인 갑돌이가 생겼다.

늦게 가질 생각은 없었지만 예상보다는 빨랐고, 그래도 양가 모두 기대했던 아이라 기뻤다.

어차피 오랜 연애 생활 덕분에라도 신혼에 대한 로망이나 기대 같은 건 별로 없었으니, 상관 없었다.

맞다- 그러고보니 갑돌이가 생긴걸 확인하고 난 다음에도 농담처럼, 아이를 가져야 해서 호적정리하느라 결혼했다고 말했더랬다.

 

그랬던 게 벌써 32주가 되었다.

이젠 품고 있을 날보다 품고 있었던 날이 더 많게 되었고, 어느덧 나올 때만을 기다리는 시기가 되어 버렸다.

 

'갑자기 생겼다'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를만큼, 아이가 생겼다는 건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일을 하는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는게 솔직한 생각이다.

 

넉넉한 연봉과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지위를 내려놓고, 어째서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안아야 하는가(정말 느낌은 떠안는 기분)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음은 치명적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엄마와 사회 생활 모두 성공할 수 있다'거나, '아이를 낳고 나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히 미혼일거다.

샌드버그 같은 독하고 똑똑한 여자조차도 여성의 사회 생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만큼, 전세계 어디를 가도 '엄마'가 일하기에 좋은 나라는 없고, 한편으로는 '엄마' 없이 잘 클 수 있는 아이도 없다고 보는게 맞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가진 것이 많다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사실 또래 아이를 품은 엄마들을 만나면, 종종 "애 낳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사회생활 할 수 있어서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아 보인다는 것은, 그 만큼 포기해야 할 것도 많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엄마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남보다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을 선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매번 묻는다.

그 생각이 진심이냐고, 혹시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애 낳는게 무슨 유세냐는 식으로, 자기 새끼 낳으면서 포기니 뭐니 운운하는게 무슨 부모될 자격이 있냐는듯이 내뱉는다.

남편은 그런 글 보지 말라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것들이 인터넷에 싸지르는거라고 말하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사실'이겠지.

 

깊진 못했지만 많았던 고민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아이는 낳는 것이 좋겠고, 내 커리어나 상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다음에 낳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려면 노산이 되어서 아이에게 안좋을 수 있으니 차라리 서른까지 할 수 있는만큼 하고 빨리 낳는 것이 좋겠다-

하는.

 

내가 결국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해서 내가 놓아야 했던 것들과 힘들어야 했던 고민들이 무시될 것은 아니니까.

샌드버그는 linkedin의 CEO 자리를 제안 받은 적이 있지만, 당시 둘째 아이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녀는 고민이 없었을까.

지금 잘되고 있다고 해서, 그 당시 샌드버그의 결정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지금 잘되고 있다'는 판단 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자의적인게 아닐까.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 갑돌이를 낳고 키우면서 난 여전히 과거의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 더 고민이기도 하다.

솔직히 많이 무섭다.

아이가 이유가 되어 더 많은 것들이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이 될까봐, 그것 때문에 세상이 나를 보는 눈과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비참해 질까봐, 그런데 그런 것들에 집착하느라 아이도 일도 모두 엉망이 될까봐.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내가 하기에 달린 거, 내가 옳은거,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몇 %쯤 되는 생각들이 스물스물 기여 올라와서 밤새 괴롭힌다.

 

난 엄마가 되기에 너무 어린걸까, 아니면 이러면서 다들 엄마가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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